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스터 션샤인 (문단 편집) == 기획의도 == || [[파일:미스터 션샤인 로고.png|width=50%]] || || '''‘뜨겁고 의로운 이름, 의병(義兵)’'''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義兵)'''들. 노비로 백정으로 아녀자로 유생으로 천민으로 살아가던 그들이 원한 단 하나는 돈도 이름도 명예도 아닌, 제 나라 [[조선]](朝鮮)의 ‘주권’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엄중한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 애달픈, 통쾌하고 묵직한 항일투쟁사다. '''‘낭만적 사회와 그 적들.’''' 20세기 초 한성(漢城).[* 원래는 19세기 초라 되어 있었으나 20세기 초로 바꿨다.] 동양과 서양이, 추문과 스캔들이, '공자 왈 맹자 왈'과 '똘스또이'가 공존하던 '''맹랑한 시대'''. '모던 걸' '모던 보이'들이 노서아 가비([[커피]])를 마시고 구락부에서 ‘딴스’를 추던 '''명랑한 시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구락부'는 club이라는 단어에서 연유된 말이긴 하지만, 지금의 클럽을 번역한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구락부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딴스를 추던 곳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으로, 구락부 내에는 도서실, 당구대, 바와 테이블, 테니스 코트 등이 갖춰져 있어 주로 차나 술을 마시며 정치 외교를 비롯한 여러 화두로 정보를 나누던 곳이었다. [[서울]]에는 정동 지역에 '서울구락부'와 '서울유니온구락부'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외국인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에 구락부에서 모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외국에서 온 각국 [[외교관]]과 [[선교사]] 정도였고 원칙적으로 [[한국인]]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즉, 춤추던 곳이 아니다. 1901년에 [[인천]] 조계지에 지어진 제물포 구락부 건물이 아직 남아있으니 참조. 모던보이나 모던 걸들이 춤을 추던 장소는 '딴스홀'이지만, 우리나라에 '딴스홀'이 생긴 것은 1937년 이후이다.] 잉글리쉬를 익혀 '초콜렛또'를 건네며 'LOVE'를 고백하던 달콤 쌉싸름한 '''낭만의 시대'''. 그러나 그 속에서 누군가는, 조국을 빼앗겨 이름을 빼앗겨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죽어가던, '''상실의 시대.''' [미스터 션샤인]은 가장 뼈아픈 근대사의 고해성사다. '''‘그리고 사랑.’''' 1905년.[* 유진이 도착하자마자 암살한 [[미국인]]의 묘비에 새겨진 년도는 1902년이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얻는 조건으로 [[조선]]을 [[일본]]의 손아귀에 넘겨버리는 밀약을 체결한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날개를 단 일본은 마침내 거친 야욕을 드러내고, 애신의 조선은 힘없이 부서져 내리는데, 어쩌자고 그녀는... 저렇듯 꽃처럼 예쁘단 말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는 2018년 방송예정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미국의 이권을 위해 조선(朝鮮)에 주둔한 검은머리의 미 해병대장교 '''유진 초이(Eugene Choi)'''와 조선의 정신적 지주인 고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애신''' 애기씨의, 쓸쓸하고 장엄한 모던 연애사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